존경하는 터키 선교의 동역자 님께,
청춘 17년의 터키 회상
선교사의 사명을 순종하고자 떠 난지 어언 16년이란 세월이 흘러 17년에 접어들어 이제 안식년을 ‘제대로’ 해보자고 차일피일 미루던 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하면 ‘순교’ 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고……아무나 갈 수 없는 곳……아무나 갈 수 없는 길…… 아무나 갈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던 사람이 이제는 매우 부족하나마 그 주인공이 되어 벌써 17년!
95년도에 정든 고국을 떠나면서 2~3년만 사역하고 돌아오리라 생각하며(곽 선교사 의 생각, ㅋㅋ..) 평범한 한국인 사역자 가정으로 살던 삶을 정리하면서 아까운 살림살이들을 처분하면서 가졌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잠시 후면 벌써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의 곱이 되어갑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30대 초반에 떠난 선교사의 삶... 사명감에 불타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어떠한 고생도 은혜로 모든 것을 다 감당하리라 주님께 올려드렸던 첫 사랑과…… 각오와 믿음이 어느새 변하고 퇴색된 “나”는 아닌가 놀라면서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적색 신호등 “비상등”이 켜짐을 보며 안식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암이란 것이 친구로 찾아왔을 때에도 안식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수술 2개월 만에 현지로 들어가면서도 안식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어려움이 있고 동시에 기쁨도 있게 마련……
영국을 거처 터키에서 살면서 국제 미아로 살기로 각오한 선교사의 삶, 그때는 이미 후회해도 늦으리!! 이것을 이전엔 미쳐 몰랐습니다. 터키에 가면 외모부터 완전 외국인…… 한국에 오면 외모만 한국인, 그러나 문화,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은 한참 변해서 또 다른 어설픈 외국인이 된 선교사임을 발견합니다.
|
|
99년도에 6.5 강도의 지진이란 것을 생전 처음 알게 되며 강진과 계속 되는 여진으로 사흘 동안 공원과 길가에서 이웃집 사람들과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생사를 같이 하면서 삶의 동반자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꼈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더욱 결속력이 강하듯…… 덜덜거리는 중고 봉고차에 기름이 떨어졌지만 빈 지갑을 알기에 길 한복판에서 서지 않기를 위해서 두 손을 모은 적이 수 십 번…… 기름 없이도 현지인 집들을 수 십 번 다녔던 것들을 어떻게 일일이 헤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이 어쩔 수 없어 차 연료가 동이 나지 않도록 기적을 행하신 경우가 몇 번이나 될지??
매달 후원금에서 아이들 학비나 사역비가 도저히 계산이 되질 않지만 이런저런 모양의 까마귀를 보내 주셔서 때를 따라 도와주셨던 ……아니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는 기적들…… 암 수술 후 제대로 검진 한번 받지 않고 5년이 지난 후에 몸에 암세포가 남아있었다는 것과 임파선 까지 전이 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진단 기록서의 내용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기적으로 살았다는 감사를…… 복음을 전하면서 때로는 알지만 이용 당해주고……배신하는 자들에게 아픈 말도 듣고……성경책을 찢어버리고 던져 버리고 우리 부부에게 소리치고 남편을 밀치고 때리려고 하고……실제로 때리고 죽이겠다는 협박의 전화를 수 차례 받아 가면서 까지 묵묵히 길을 가는 선교사의 삶…… 어찌 종이 한 장에 수 많은 사건들을 그리고, 수 만 가지의 감사의 제목들을 쓸 수가 있을까?
모든 것을 지내놓고 회상을 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고 보호하시고 돌봐주시는 그분, 바로 우리 주님께서 시마다 때마다 같이 하셨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 수가 있었고 견딜 수가 있었음을 확신한다. 오로지 주님께 빚진 자로 그리고 저희를 알고 계시는 모든 동역자들의 기도의 두 손과 희생하심의 물질 후원과 변하지 않는 사랑과 격려로 이끌어 주신 분들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합니다. 선교는 혼자가 아닌, 주님의 철저한 인도하심과, 헌신된 사역자와, 뒤에서 돕는 헌신된 후원자들의 연합이 없으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선교임을 16년의 선교사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보면서 은혜로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되었다.
|
이스탄불 ‘오르타’ 건물을 임대해서 주일 예배하던 당시 예배장면 |
제 1호 터키인 선교사 후보생 발굴:
‘하늘빛’선교사 후보자: 터키인 ‘하늘빛’(가명) 자매가 전임선교사로 헌신했답니다. 사역방향은 고아, 과부 같은 자들을 향한 긍휼사역을 꿈꾸고 있으며 ‘하늘빛’ 후보 선교사의 후보과정이 ‘웩 선교회’ 국제동원본부를 통해서 후보자 과정이 조속한 시일 내에 주의 인도 속에 시작 되었으면 합니다. 터키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해 모국역할을 감당할 파송 본부와 함께 할 기도후원, 물질 후원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터키교회가 이러한 헌신자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안식년(국내사역) 허락: 2011년 여름 – 2013년 여름
아론의 ‘첫’ 한국 학교생활
|
|
‘자전거 했더니……’ 스토리
지난번 저희의 친구이신 수지에 사시는 ‘길 집사’ 댁에서 며칠 묶게 되었는데 ‘곽 선생’이 아침 일찍 아파트 단지 내를 걷다가 쓰레기 수거지역에서 어린이용 자전거를 발견하고는 주춤~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확인, “야호! 버린 거란다..” 하며 그럴듯한 자전거를 줍게 되었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 막내 아론이가 그 자전거를 보며 어찌나 좋아하든지 “내가 자전거, 자전거 했더니 하나님이 주셨어요!” 라고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자전거 자랑을 한다. 터키서도 사달라고 졸라 대던 그 날들, 한국에서도.. 다음 또 다음에로 미루던, 아론의 기대감은 ‘노마드’ 종족 이동으로 거의 물거품같이 사라지던 차, 아들의 왕 상심! 아빠와 엄마는 왕난감! 만감이 교차하던 때.. 그러나, 짱 상세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이렇게 해결하시더군요.
기타 청지기로 맡겨진 물건들:
(약간 맛이 간 청소기를 또 그런 장소에서 주웠고, 신발, 가방, 옷가지들, 차, 머무는 집 등등은 모두를 빌려 쓰고 있는데 여호와 이레 어찌나 상세히.. 기가 막혀!! 혀를 내두를 정도;-) )
부족한 종들이 마음 깊은 감사와 사랑을 드리면서
안식년 임시 거처 청주에서,
터키 선교사
최 현, 곽 미경 그리고 세 아들: 요셉, 다윗 그리고 아론 드림
|
기도제목: 1. 감사제목: 지난 17년간 함께 하신 주님과 여러 후원교회들과 개인들로 인해 감사! 5개 지역에 작은 예수공동체들이 세워지고 미흡하나마 리더역할을 하는 성숙한 성도들로 감사! 부족한 종들을 사용하시고 말할 수 없는 은혜, 기적, 구원에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2. 안식년 계획과 재 충전의 시간들을 위해서.. (터키 재 입국 예정일 – 2013년 7월) 3. 파송교회를 구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재 파송 절차까지 선하심 인도하심을 위해서 4. 코다 교회 셀 가정교회의 리더들을 위해: 5명의 지역 셀 리더들이 잘 세워지고 최, 곽 선교사 가정의 안식년 기간 중에 현지인 리더체제가 잘 운영 될 수 있도록 5. 부족한 선교비, 다윗 (대학3년생)과 아론(초등4년)의 학비 마련 되도록.. |